<적응이 안 돼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적응장애)>
군의관 시절 참 많은 진단서를 썼던 것 같습니다. 적응장애가 단연코 1등이었죠. 군대라는 답답한 환경, 새로운 대인관계, 상명하복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울하고 불안해하던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군대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두가 잘 적응을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힘들다고 느끼는데 남들이 상황이 좋아졌다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회생활도 만만치 않죠?
청소년들은 학업문제, 친구문제로 힘들어 하지만 부모님은 이 좋은 환경에서 뭐가 힘드냐며 참으라고만 하십니다. 성인이 되어 취직문제, 결혼문제로 힘들어 주변에 하소연해도 남들 다 하는 고민 혼자 유별나게 힘들어하냐는 반응에 말을 꺼내기 조차 눈치가 보입니다. 힘들게 결혼, 취직에 성공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과제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혼, 직장 내 인간관계의 어려움, 경제적인 어려움. 이제는 누구에게 말하기도 힘들고 외롭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건강문제로 아픈 것도 서러운데 자녀 눈치가 보여 몰래 치료받곤 합니다. 내가 잘 못한 것도 없는데 혹시라도 내가 짐이 되지 않을까, 폐만 끼치는 것 아닌가 부담을 줄까 봐 걱정이 됩니다.
'난 더 힘들게 살았다, 주변에 더 힘든 사람도 있는데 뭘 그러냐, 약해 빠져서 그렇다, 배부른 소리한다, 의지부족이다' 라는 사람들. '걱정만 하지 말고 이래저래 해결을 해야지' 하며 훈수를 두는 사람들.
정신과 의사라고 이 상황에서 뭘 해줄 수 있을까요?
사실 그 상황을 해결할 묘책이 있는 것 아닙니다. 미래를 예측하여 결정을 내려줄 수도 대인관계를 대신해 줄 수 도 없습니다. 실망스럽죠.
하지만 내 편에 서서 끝까지 옆에서 있어줄 수 있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두려워 얘기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편하게 마음껏 털어놓으셔도 좋습니다. 법적으로 확실히 비밀도 보장되고 일상에서 마주칠 사람도 아니니 더욱 편하죠. 난 어떤 사람인지,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 왜 이 상황이 힘든지 같이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그 상황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고 해결할 힘이 생길 겁니다. 너무 혼자 걱정하지 마시고 용기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