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우린 지금 자살률은 OECD 1위와 동시에 항우울제 처방률은 최하위권인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그보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낙인이 무서운 사회이죠. 정신과 의사로서 참 서글픈 일입니다. 누구나 우울할 수 있지만 그 누구의 시선 때문에 선뜻 치료받지 못하는 사회.
정신과 진료는 본인이 직접 기록을 발급받아 제출하지 않는 한 가족, 직장, 다른 병원 의사 아무도 진료 여부 자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상담, 약물처방의 90% 이상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대표적인 보험과 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무리 알려도 편견이라는 것이 참 무섭게도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모르고, 알게 되어도 의심하고 망설입니다. 낙인에 대한 공포가 그만큼 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문제인데 왜 치료받아야 하나요?
실제 치료를 받지 않아도 2년 정도가 지나면 우울증 환자의 80%이상이 저절로 낫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울한 상태로 2년이란 시간은 참 길기도 하고 그 사이에 많은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대인관계, 직장생활에 상처가 남고 술에 의존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심한 경우 자살 생각이 들고 시도하기도 하고요. 우울한 감정 자체는 시간이 지나 회복된다 하더라도 그 동안 우울증이 내 주변에 남긴 상처로 인해 다시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우울증 치료가 그래서 필요합니다. 회복시간도 단축시켜주고 우울한 강도도 낮춰주어 상처도 덜 남기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단 살고 봐야죠.
내 상황이 똑같은데 내가 치료받는다고 뭐가 달라지죠?
인간의 생각과 감정은 뇌에서 주관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면 뇌가 고장이 납니다. 안 그랬던 사람이 과거에 힘들었던 일들만 떠오르고 현재도 부정적인 것들만 눈에 보이고 미래도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우울증에 걸리면 다들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이렇게 우울증이라는 질환은 뇌에 생기는 질환이기 때문에 생각과 감정에 증상을 만들어 냅니다. 감기가 코와 목에 콧물과 인후통을 만들어 내듯이 말이죠. 하지만 감기와 다르게 우울증은 뇌를 지배하기에 증상을 구별해 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약물치료가 고장 난 뇌 기능을 점차 회복시키면 우울한 감정도 회복하고 정상적인 사고도 가능해집니다. 상담과 정신치료를 통해 내 정상적인 생각과 감정을 우울증이 만들어낸 생각, 감정(증상)과 구별하도록 도와줍니다. 정신과 약이 뇌에 작용해 생각과 마음을 마음대로 바꿔 이상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건강했었을 때 내 생각과 마음을 찾아주는 것뿐입니다. 치료가 상황 그 자체를 바꾸지는 않지만 내가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기게 해줍니다. 지나고 나면 '그땐 왜 그렇게 혼자 심각했을까? 왜 그런 생각을 했지?' 그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